멜뀌아데스의 창고/사이
이병률, 고름
Mealda
2014. 9. 4. 01:53
고름
나를 깎아서
바늘을 만들어야지
바늘을
발바닥에 꽂고
걸어서 가야지
누구나 문을 만들고
누구나 그 문으로 들어가는 것처럼
걸음을 디딜 때마다
생각에서 피가 날 것이고
그 생각의 끝은 더 날카롭고 뾰족한 것이 되어
내 머리를 찌를 것이라
찌른 바늘은
한 부위에 깊숙이 구멍을 파고 들어가
혈관을 따라 나를 훑을 것이니
바늘이 되어야지
피할 수 없는 것 앞에서
누구나 눈을 질끈 감듯
행여 다정을 바라지는 않으리라
다정과 한몸이 되더라도
단 한 번 삐끗하면 삐끗한 마음에 찔릴 것이라
내 바늘로 나를 꽂으리라
그러지 않으면
단 한 번 스치기만 한 그 사람의
붉고 뾰족한 것에 긁히고 휩쓸려
사정없이 곪을 테니
-이병률, <눈사람 여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