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뀌아데스의 창고/사이
허수경, 입술
Mealda
2014. 9. 7. 15:50
입술
너의 입술이 나에게로 왔다
너는 세기말이라고, 했다
나의 입술이 네 볼 언저리를 지나갔다
나는 세기초라고, 했다
그때 우리의 입김이 우리를 흐렸다
너의 입술이 내 눈썹을 지나가자
하얀 당나귀 한 마리가 설원을 걷고 있었다
나의 입술이 너의 귀 언저리를 지나가자
검은 당나귀 한 마리가 석유밭을 걷고 있었다
바람이 불었다
거리의 모든 쓰레기를 몰고 가는 바람
너의 입술이 내 가슴에서 멈추었다
나의 입술이 네 심장에서 멈추었다
너의 입술이 내 여성을 지나갔다
나의 입술이 네 남성을 지나갔다
그때 우리의 성은 얼어붙었다
말하지 않았다
입술만 있었다
-허수경, <빌어먹을, 차가운 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