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남자는 오이디푸스의 서사소를 차용한 드라마다. 오이디푸스는 한 도시에 역병이 돌아 그 역병의 원인인 선왕 살해자를 찾아내는 이야기다. 결국 그 도시의 왕 오이디푸스(사건 조사를 시킨)가 운명의 희생자로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를 범해 아이를 낳은 남자로 밝혀진다. 오이디푸스는 제 눈을 찌른다.
이 서스펜스 스릴러 물은 '범인은 바로 너야'라는 결론을 이끌어내기 위해 각종 장치를 도입한다. 오이디푸스라는 이름 '발이 곪은 자'는 그의 상처에 붙여놓은 이름이다. 그는 어린 시절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를 범할 거라는 신탁 때문에 버려진다. 그를 죽여야 하는 그 집안 종복은 오이디푸스를 가엾게 여겨 죽이지 않고 다른 나라의 아이 없는 왕가에 준다. 버려질 당시 오이디푸스는 발에 상처를 입는다. 그에게 그 상처는 낙인인 셈이다.
성장한 오이디푸스는 자신이 양자인지도 모르고 신탁(부친 살해, 모친 강간)을 듣고 지레 겁을 먹고 도망한다. 그는 떠돌이 생활을 하다 스스로의 지혜(?)로 스핑크스의 문제를 풀고 왕이 없는 나라의 왕이 된다. 잠깐 개 같은 성질 때문에 살인을 저지르는데 그는 정당방위라고 생각했지만 알고 보니 그게 자기 아버지였다. 그가 떠돌다 돌아온 나라가 바로 자신을 버린 그곳이었음을 가장 나중에 알게 된다.
오이디푸스는 정체성의 문제를 다룬다. 그래서 아직도 여기저기 회자된다. 인간은 아직 인간이 누구인지 모르기 때문이다. 게다가 기막힌 반전이 있기에 2500년이 지난 지금도 살아 남아있다.
김남길, 한가인 주연의 <나쁜 남자>에서 김남길은 오이디푸스 역을 맡고 있다. 심건욱(김남길)은 자주 자기도 자기가 누군지 모른다고 독백을 내뱉는다. 그는 어린 시절 운명의 장난에 의해 잠깐 가족 관계를 맺었던 해신 그룹에서 쫓겨나며 등에 상처를 입는다. 오이디푸스의 상처와 같다. 서스펜스가 진행되는 내내 그 상처가 그의 존재를 증명한다.
인간은 아플 때 가장 생생하게 살아있다. 이상한 일이다. (사디즘, 매저키즘도 그래서 나오나 보다.) 친부모 역시 운명의 장난처럼 그때 교통사고를 당한다. 내적 상처의 실물성이라 할 만하다.
심건욱은 떠돌이가 되나 미국에 입양돼 자수성가한다. 잠깐 나온 이력서를 보면 기업 합병 MBA 학위를 석사까지 딴 데다 일어, 영어에도 능통하다. 자신의 지혜로 스핑크스의 문제를 푼 오이디푸스와 같다.
심건욱(홍태성, 최태성이란 이름으로 나오는 김남길)은 일도 하며 복수도 한다. 해신그룹을 망가뜨리는 것이 바로 그의 복수이자 기업합병이란 일이다. 그의 말에 따르자면 지들이 한 짓이 뭔지를 보여주겠다는 일념 때문이다. 한 인간의 인생에 상처를 남긴 이들에게 인간이 얼마나 무서운지 알려주겠어, 이런 마음이다.
그리고 그는 차츰 해신그룹에 접근해 그 집안을 망가뜨린다. 돈, 권력, 가족관계 등등 그들이 가진 모든 것을 부서보기로 한다.
오이디푸스 서사는 근친상간의 서사다. 운명의 장난 때문에 엄마와 결혼해 자식까지 낳아버린 남자의 이야기다. 심건욱(김남길)은 한때 자신의 누이들이던 여성 홍태라와 홍모네를 유혹하고 성공하며 근친상간 서사를 완성한다.
10회가 넘어가 복수극이 성공해가며 점차 한 집안이 망가져간다. 무너져가는 왕가의 모습 같다. 제작진도 이를 고려했는지, 그 집 장남이 죽고 나자 그 집안의 쇠락해간다는 인상을 롱테이크로 잡는다.
상처나 정체성의 문제, 근친상간의 문제 이외에 <나쁜 남자>에서 오이디푸스 서사는 목동과 사자 역할을 맡은 해신 그룹 보모나 비서들에게서 잘 나타난다. 오이디푸스를 죽이지 않고 살려낸 목동과 사자 역할을 보모와 비서가 해내는 중이다. 그들은 예전에 버린 아이가 죽었다고 보고하지만, 이제 돌아온 그 남자(김남길)가 바로 예전에 자신들이 공모한 그 사건의 주인공임을 차츰 눈치챈다.
<오이디푸스>에서 '앎'은 엄청난 문제 요인이다. 테이레시아스(예언자)가 알고 목동이 알고 이오카스테가 알고 오이디푸스가 안다. 인간은 자기 존재를 알지 못해 괴로우니, 이 역시 대단하다.
지금 <나쁜 남자>에서는 엄마가 알았다. 이오카스테의 역할을 해내고 있다. 점점 히스테리컬한 연기를 하는 그녀의 모습 속에 이오카스테가 보인다.
앞으로 회장과 심건욱이 알 것이다. 심건욱은 그들이 자신의 가족임을 알게 되나? 이건 아닐 수도 있겠다만...
거기에 한가인(문재인-재밌는 이름이다.)이 가세해 러브 라인을 진행된다. 하지만 사실 뒤로 갈수록 서스펜스는 멈추고 이상한 감정 문제로 이야기를 끌어간다.(초반부에는 심건욱이 살인자인가, 그만큼 잔인한가로 이야기를 끌어간다. 제목이 나쁜 남자라 할 만하다. 걔는 정말 나쁜 놈인가. 지한테 잘 대해준 누나까지 죽일 만큼) 감정의 선이 너무 왔다갔다 해서 재미가 덜하다. 왜 저래, 이런 생각이 들 때가 많아 스킵하게 된다. 저렴하게 이야기하자면, 왜 심건욱(김남길)은 문재인(한가인)에게 반했는가, 여기에도 정말 문제가 많다. 예뻐서인가? (음, 그럼 이제 성형외과로 달려가야 되나요? 생긴 건 운명이니 우리는 모두 운명의 장난의 희생물인가요? 하긴... 인간이 시각에 약한 동물이긴 하다.) 아니면 가련해서인가?(동정심이란 감정은 인간만이 갖는다니 이 역시 중요하긴 하다.) 하지만 촘촘하지 못하다. 드라마나 인생이나 연애사가 없으면 재미가 없긴 하지만, <나쁜 남자>는 안타깝게도 여기서 에러가 난다. 네이밍 센스를 보면, 문제 요인임을 작가도 알고 있었던 것일까 싶어 재밌다. 아니면 문재인이 그의 구원일지도 모른다는 암시. 우리의 문제는 실은 구원 혹은 희망이기 때문이다.
문재인 이야기를 잠깐 더 하자면, 문재인은 신데렐라 콤플렉스에 빠진 여성이다. 돈 많은 남성과 결혼해 인생 한 번 다른 방향으로 돌려볼까 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돈이 계급이다. 그녀는 계급 상승을 꿈꾼다. 그녀가 한 말 중 인상 깊은 대사도 있다. 나폴레옹이 했다는 말이다. 마차가 뽀대나니까 사람들이 쳐다본다는 대사인데, 잘 썼다고 생각했다.
이제 남은 것은 사랑과 용서다. 복수가 복수를 부르므로, 사랑과 용서로 극복하자. 이 역시 인간의 삶이다. 오래 전부터 많은 분들이 한 얘기다. 또한 돈도, 권력도, 명예도, 인간의 삶이다.
<나쁜남자가> 좀 더 촘촘했더라면 좋았을 텐데 싶다.
어쨌든 고전은 힘이 세다. 다른 말로 하면 인간은 계속 똑같은 고민을 한다. 시간은 무한대에 가깝고 우리는 거기 묶인 한낱,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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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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