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자
난 삶은 달걀 흰자로도 사람을 죽일 수 있어요
어느 포장마차에서 달걀을 까는 나에게 그가 말했다
그건 힘으로 하는 일이 아니니까요
달걀 흰자에 증오를 싣고
나머지 모든 것을 다 실어요
그 사람이 죽을 수 있을 정도로
그러면 그 사람은 죽는 거예요
못이나 칼 같은
어떤 날카로운 거라면 이해할 수 있지만, 내가 말했다
부드러움으로 사람을 기절시킬 수 있어요
정반대의 것으로 사람을 정반대할 수 있다고요
노른자를 먹다 죽은 사람도 있다는데
흰자라고 사람을 살리지 못할까, 나는 생각을 삼켰다
쩡하니 달이 빛나는 골목길에 쪼그려 앉아 중얼거린다
아, 무엇으로든 무엇을 할 수 있다
그자는 나를 태어나게 할 수도 있겠군
오늘 이 밤 비린내 나는 영혼을 만났으되
큰 날카로움을 피했다
한 치도 부서질 염려 없이 고요히 둥근 달
이 무례한 달빛을 맞아
죽을 수도 있을 거란 생각이 시작된다
그토록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어떤 맛이
다시 시작하고픈 어떤 맛이 파문을 만든다
살갗에 닿자 실기가 느껴지는 사글사글한 맛이었다
-이병률, <눈사람 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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