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노보노, 살아 있는 한 곤란하게 돼 있어.
살아 있는 한 무조건 곤란해.
곤란하지 않게 사는 방법 따윈 결코 없어.
그리고 곤란한 일은 결국 끝나게 돼 있어.
어때?
이제 좀 안심하고 곤란해할 수 있겠지?
- P.15
이 부분이 거의 처음 인용인데, 보자마자 이 책을 계속 보게 되겠군 생각했다. 이보다 곤란함을 편안히 잘 넘기게 얘기해줄 수 있을까.
사실 보노보노 만화책도 보지 않았다. 캐릭터가 귀여운데 하며 트위터로 보노보노챗봇을 팔로잉 하긴 했지만 트위터 자체를 잘 안 하니까 사실 잘 알지 못했다. 보노보노가 어쨌다는 건가. 보노보노처럼 사는 건 뭔가 싶은 생각으로 책을 본 이유는, 인기가 있는데 그게 지속적이면 깊이가 있지 그런 생각을 조금 해서다. 예전에 비슷한 생각으로 보노보노 만화책을 사볼까도 했으나 그도 잘 되지 않았다.
연체가 돼서 몇 번인가 반납할까 하다 끝까지 다 봤는데 역시 다 보기를 잘 했다는 생각이 든다.
보노보노가 엄청 좋은 대사로 가득한 책이라는 사실. 인생에 대해 담백하게 말한다. 장구한 설명도 아니고 그저 한 마디 툭툭 던지는데 그게 엄청나다.
너부리_나 좀 이해 안 가는 게
어제 뭘 했다느니 오늘 날씨가 어떻다느니…….
그런 얘길 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어.
포로리_아니야. 다들 그렇게 재미있는 일만 있는 게 아니라고.
만약 그렇게 재미있는 이야기만 해야 한다면
다들 친구 집에 놀러 와도 금방 돌아가버리고 말 거야.
보노보노_그건 쓸쓸쓸하겠네.
포로리_쓸쓸하지! 바로 그거야, 보노보노!
다들 쓸쓸하다구. 다들 쓸쓸하니까
재미없는 이야기라도 하고 싶은 거라구.
P.23
나는 화를 잘 못 낸다.
나는 화를 잘 못 낸다.
화를 내는 건 모두에게 '내 것'이 뭔지
알려주고 싶어서 그러는 거라고
야옹이 형이 말했지만
나는 '내 것'이 뭔지 잘 몰라서
화를 잘 못 내는 것 같다.
P.58
야옹이형_내가 이긴 게 아니야. 그놈이 졌다고 생각한 거지.
엄마 곰_왜 그놈은 졌다고 생각한 건데?
야옹이형_나는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을 잘 짓거든.
엄마 곰_그럼 당신이 이긴 게 아니라는 거야?
야옹이형_이긴 놈은 없어. 졌다고 생각한 놈이 있을 뿐이야.
P.71
보노보노_나는 아빠에 대해 전혀 몰랐던 걸까?
고래 장로_응. 몰랐지. 앞으로는 더 모를 거야.
눈에 보이는 거랑
지금 아는 것만 알고 있으면 되는 거야.
P.77
야옹이형_응, 지루해.
난 그저 아무 일도 없는 걸 확인하기 위해서 걷는 셈이야.
걷고 있으면 마음이 차분해지거든.
'아! 오늘도 아무 일도 없었구나!' 싶어서.
…
포로리_아, 아무 일도 없다는 건 좋은 거구나.
P.98
보노보노_아빠, 봄이 왔네.
아빠_응. 그러네.
보노보노_겨울 다음에는 꼭 봄이 오네.
아빠_응. 세상에는 정해진 게 있어야 해.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 변하지 않는 일이 있어야 하지.
보노보노_그렇다면 그건 누가 지키고 있는 걸까.
P.112
홰내기_되고 싶다고 생각하는 건
좋아하는 것을 발견하는 거랑 비슷해.
된다는 건 좋아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말하는 거랑 비슷해.
P.125
머리가 벗겨지는 건 쉬워.
그걸 포기하는 게 어려운 거야.
P.129
내가 어른이 되면 누군가 "됐어"라고 말해줬으면 좋겠다.
아직 안 됐다면 "안 됐어"라고 말해줬으면 좋겠다.
그렇다면 나는 조금 안심이 될 것 같다.
그렇다면 나는 조금 알 수 있을 것 같다.
P.133
아가야, 아빠는 또 야옹이 형에게 졌단다.
하지만 아들아, 졌을 때의 아빠 얼굴도 잘 봐둬야 한다.
잘 봐라, 이게 졌을 때의 아빠다.
P.156
봄은 저쪽에서 천천히 천천히 오는 거구나.
달팽이는 걷는 게 늦구나.
그럼 아주 오래전부터 계속
내가 있는 여기까지 걸어온 거구나.
역시, 천천히 오는 건 굉장해.
P.165
'노래를 하고 있어'는
'가수가 되는 것'과 어떻게 다를까.
'노래를 하고 있어'는 노래를 하는 거고
'가수가 되는 것'도 노래를 하는 건데
둘 다 노래하는 건 마찬가진데.
P.183
작은 공간에 틀어박혀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보면
그 공간 안에는 나보다 큰 것들은 그다지 없잖아.
'가장 큰 나'의 고민이니까 엄청난 일이라 느껴지는 거 아닐까.
그런데 밖으로 나가보면, 나보다 큰 것들이 눈에 들어오고
게다가 그것들은 고민 같은 건 하지도 않는단 말이지.
대자연의 거대함에 비하면
나는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
고민 같은 건 있지도 않은 거야.
P.205
생각은 항상 하나만.
많을 때는 두 개.
세 개는 쓸데없어.
세 개부터는 분명 자기에 대해서 생각하는 거니까.
P.233
못하는 건 말이다.
얼마나 못 하는지로 정해지는 게 아냐.
얼마나 하고 싶은지로 정해지는 거야.
…
알겠니? 못 하겠으면 , 다른 걸 해.
P.244
꿈이 왜 이상하냐면, 다들 원래부터 이상하기 때문이야.
깨어 있을 때는
'그러면 안 돼, 이러면 안 돼' 따윌 생각하면서
조금 덜 이상하게 행동할 뿐이야.
P.273
포로리_도움이 안 되는 것이어야 취미라고 할 수 있어.
너부리_취미란 노는 거야. 어른이 '논다'고 하면 멋없으니까
취미라고 부르는 것뿐이야.
홰내기_어른이 되고 나서도 놀기 위해서 취미란 게 있는 거야.
P.278
무언가가 일어나면 무언가가 움직인다.
무언가가 움직이면 무언가가 일어난다.
마치 물 같다.
마치 물 같다.
저쪽 물하고 이쪽 물이 이어져 있는 것처럼.
이어져 있는 것처럼.
P.300
무언가를 하면 반드시 무언가가 벌어진다.
어딜 가득, 어디에 있든, 무엇을 하든
반드시 무언가가 벌어지는 것이다.
아, 멋진걸.
P.302
슬픔은 병이야.
그렇다면 낫기 위해서 살자고 생각했어.
살아 있는 게 분명 낫게 해줘.
P.319
보노보노가 엄청난 건 계속 솔직하게 바라보는 시선, 솔직하게 얘기하는 것이라고 작가는 말한다. 사실 모든 아쉬운 순간은 솔직하지 못했던 모든 순간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 쉬운 길이 왜 이리 어렵나.
앞으로 무지개를 볼 때는 늘 인생의 마지막 무지개라는 것을 염두에 두고
좀 더 지켜봐야지.
그러고 보면 관계에 있어서 가까워지고 싶은 마음만큼 중요한 것은 그 마음을 선하게 받아들여주는 마음이 아닐까. 모든 관계는 그로 인해 시작되니까. 그렇게 시작된 관계는 '그러려니 하는 마음'으로 유지하면 된다는 것을 보노보노와 친구들은 알려주었다. 천천히 걷듯이 이어가는 관계는 좀처럼 깨지거나 망가지지 않을 거라는 것을 가르쳐주었다.
p. 33
"기분하고 진실은 다르잖아. 네가 느끼는 기분이 네 진실은 아니야. 진실은 따로 있는데 우리는 늘 기분으로 모든 일을 판단하잖아. 우리는 늘 기분으로 모든 일을 판단하잖아. 그러면 더 힘들어져. 그 기분은 네가 아니야. 네가 가진 진실이 너지."
P.293
뭘 잘하든 못하든 그냥 그 자체로 존재하면 큰일 나는 건가.
P.2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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