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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뀌아데스의 창고/영화

지구를 떠나는 영화 지구로 돌아오는 영화_그래비티&인터스텔라

 

어제 영화관에서 영화를 봤다.

크리스토퍼 놀란의 <인터스텔라>.

인생의 영화라 부를 있는 <다크나이트> 영화 감독이 찍은 우주영화

나는 어제 <인터스텔라> 끝나자마자 말했다.

"영화가 너무 어려워."

 

 

 

작년 이맘때쯤 편의 영화를 같은 극장에서 봤다.

(왕십리 cgv 아이맥스관)

알폰소 쿠아론의 <그래비티>이다.

다른 점은

<그래비티> 3D 안경을 쓰고 봤고 <인터스텔라> 맨눈으로 봤다는 것이다.

거대한 화면에 압도당하며.

 

 

 

 

 

 

 

우주는 거대하다.

하물며,

존재인, 어쩌면 사라져도 누구인지도 모를, 사람이

그저 많은 관객 하나로

 

 

 

우주는 너무 거대하고

자연은 무섭고

우리는 거기에 대처하기엔

너무 미미하다.

앞자리에서 영화를 보는 당신도 마찬가지.

 

지금 한국에는 겨울이 닥쳐오고 있고

낙엽은 지고 이제 자연은 잠깐 숨을 거르려는 시점,

거대한 하얀 다른 우주가 밀어닥치기 직전

영화를 극장에서 1년의 시간차를 두고 셈이다.

 

참고로 말하자면

나는 작년 생일이라는 , 다시 <그래비티> 보러 갔다.

아이맥스 3D관이었다.

그러고 싶었다.

<인터스텔라> 대해서는

아직 모른다.

날이 닥치지 않아서.

 

 

그러나 내년에도 그날이 온다면

나는 <그래비티> 보러 같다.

이곳에 살고 있다면.

 

 

제목부터 이야기하자면

그래비티를 해석하자면 중력

인터스텔라를 해석하자면 별속으로

.

그래서인지 <그래비티> 산드라 블록의 여정은 중력, 지구의 인간이 지구로 돌아오는 이야기다.

<인터스텔라> 별속으로 들어가는 인간들의 이야기다.

 

 

영화 모두

공간 설정을 우주 공간과 안의 좁은 비행선 안으로 두고서

전체 스토리가 전개된다는 점에서 유사하다.

 

가장 사랑하는 딸마저 죽어버린 상황에서도 살아서 돌아오려는 산드라 블록

가장 사랑하는 딸이 기다리는 지구는 멸망하는 상황에서도 돌아가려하는 주인공 남자

 

영화의 설정은 이렇다.

 

나는 <그래비티> 작년에 보았고 이후 적은 없다.

어제 <인터스텔라> 보았다.

 

이런 나의 사정 속에서 보자면

나는 내년에 영화 영화를 아이맥스로 있다면

<그래비티>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이곳에 살아야 하므로

아무 희망 없이도

땅에발을 디뎌야 하므로

라고 말하겠다.

 

왜냐하면

그래비티는 철저학 고독

살아간다는 자체의 고귀함

무로 사라져가는 것의 두려움을

축소한 그러나 가장 무한한 공간 속에서 그려준다.

 

 

이에 비해

인터스텔라는

정말 지적인 영화이며 놀란의 야심작이라 생각하고 어쩌면 그의 최고의 영화로 기록될지도 모르겠으나

지적인 두뇌싸움 뒤에 존재하는

(심지어 대사도 썼고 (타스의 유머나 솔직함의 퍼센티지란 정말 재치 최고다)

앞의 복선도 훌륭하다

일부러 바다가 있는 행성에서 상대성 원리를 보여주기 위해 노력하고

편집도 훌륭하다

지구상황과 우주상황을 대비시켜주는 만박사를 만났을 때의 상황 )

계산과 만나고 말았다.

나는 그랬다.

오만함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나는 언제나 인류가 멸망하지

지구는 계속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이다.

그러니까 인간의 오만을 경계하는

더 높은 차원을 경외하는

사람이다'

 

 

 

<그래비티> 대해만 말한다면

사람의 우주, 사람의 공포, 사람의 절망, 사람의 사랑

이야기다.

그녀는 나사 직원이지만

딸이 죽고 하염없이 자동차만 몰던 여자다.

그녀는 길을 잃었고

돌아갈 곳은 없는 사람인데도

돌아가고자 애쓴다.

왜?

그녀조차도 모른다.

사는 게 전부고

사는 게 절체절명이고

그녀는 살아있는 생물의 소리에 운다.

왜?

그녀도 모른다.

 

 

그러나 <인터스텔라>

모든 사람의 우주, 모든 사람의 공포, 모든 사람의 절망, 모든 사람의 사랑

말하지만

결국 내게 설명해주지 못했다.

 브랜드 박사는 거기 도착했을 때부터 늙기 시작했다면 이미 오랜 시간 지구의 시간을 혼자 견뎌내야하는 것인데

어떻게 했나요

시간차는 무엇인가요

주인공 남자는 브랜드 박사의 에즈먼드에 대한 사랑을 눈치챘나요

힘은 무엇인가요

 

<인터스텔라> 마지막 장면에서 주인공은 여주를 찾아 떠나는데

그게 나에게는 설명되지 않았다.

딸은 죽고 그는 다른 사랑을 찾아 떠나는

그런데 ???? 어떻게????

 

이에 비해 <그래비티> 산드라 블록이 지구에 도착했을

아무도 없다.

그럼에도 그녀는 여기 와서

무한한 환희를 느낀다.

살아있다는 자체에 대한.

여기에는 아무런 질문이 없다.

자체로

공감할 있는

영상으로

모두 말한다.

존재가 존재로 살아가는 이야기

 

 

그래서인지

내게는 시공간에 대학 물리학적 질문보다

(나는 3차원 인간이라 4차원, 5차원 설명 못하는 사람이다. 재작년 어쩌다 <E=MC2> 봤으나

나는 4, 5차원을 말로 하지 못했다. 인간의 언어로 없었다.)

사람의 이야기가 와닿았다.

 

어떻게?

왜 나는 알 수 없죠?

시간이 각자 다른데

그래서 뭐

그녀는 정말살아있나요?

 

크리스토퍼 놀란의 영화는 내게 달착륙 하고 달착륙 했다고 말하는 미국 거대 강대주의처럼 약간 거부감이 들고 말았다

 

우리가 모르는 우리의 미래가 힌트를 주고 우리는 거기 따를 것이오.

그에 따라 인류는 영원할 것이오.

보다는

쿠아론의 사람의 존재론이 가슴을 때렸다.

사랑하는 아무도 없는데 살려고 하는 여자의 이야기.

 

 

( 박사가 여기서 그런 존재를 상징하지만

그는 너무 허무하게 사라진다.

잘못된 도킹으로

말을 듣지 않아서

그렇다면 그는 그동안 그다지도 지성을 예찬했는지에 대해

영화는 살려는 의자라고 함축한다.

그는 악인이 되는데, 악인이 <그래비티> 여주인공 산드라 블록 같았다.

과연 그녀는 악인가?

과연 그녀는 이기적인가?)

우리가 아는 우주 속에서.

 

누군가는 쿠아론이 2인자라고 하는데

나는 말에 반대한다.

 

차라리 우주, 혹은 자연, 혹은 미지에 대한

겸손함

오만함이라고 표한다면

인간인 나는

결국 인간으로

나는

100년의 생을 사는

겨우 인간의

처절한 몸부림을

내년 다시 것이다.

이곳에 발을 딛기가

얼마나 내게 어려웠던가.

 

무성한 자연과 미지에 대해

무심하지 못한 인간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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