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명의 남녀가 다 벗고 등장하지만 공연 도중 야하다거나 그런 느낌은 한번도 들지 않았다. 야하다는 느낌의 정체는 뭘까?
산다는 것의 정체를 모르므로 다른 모든 것에 대해서도 정체를 물어선 안 되는 건가?
나도 화장을 하지만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왜 이렇게 얼굴에 색칠공부를 해야 하는가 하는 생각. 아름다움의 유혹 뒤에는 결국 사랑 받고자 하는 욕망이 숨겨져 있다. 예쁜 옷을 입고 예쁜 얼굴을 할 때는 누군가 당신 멋져요, 이런 말 해주길 바라는 욕망이 없다고 말할 수는 없다.
'please'는 그런 인간 욕망을 반대로 현시한다. 다 같이 발가벗고 나서 보는 것이다. 사랑 받기 위해 벗고 사랑 받기 위해 입는 이 이상한 세상이여!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은 사실 극이 끝난 뒤 안무가인 마리사 고도이의 설명을 들었을 때고, 실제로 무용을 보는 도중엔 그런 생각보다는 인간의 육체란 저렇게 생겼구나, 남녀는 참말로 다르구나 이런 생각을 했다. 마치 수컷과 암컷 사자가 다른 것처럼 인간 동물의 암컷과 수컷도 다르다. 생긴 것부터가 다르구나 라고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다. 그 외엔 놀라서였는지 늦게 들어가 헉헉 대며 봐서인지 웃고 즐기다 보니 공연이 끝났다.
며칠 전 서점 갔다가 <인간생태보고서>란 책을 들춰보다 왔는데 그 책의 구절들이 떠오른다, 인간이란 동물은 종족 보존을 위해서만 성 행위를 하는 것은 아니고, 자기를 꾸미는 데 대단히 관심이 많은 동물이란 구절이다.
어디가 한계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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